포스테키안

2017 여름호 / 세상 찾기 Ⅱ / 자신만의 길을 ‘설계’하다, 디자인

2017-07-2120

자신만의 길을 ‘설계’하다, 디자인

 

디자인, 공과대학교에 다니는 우리와는 참 멀어 보이는 단어이다. 디자인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뭔가 미술과 관련된 이미지가 연상될 것이다. 모양을 예쁘게 만들고, 사람들의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를 증폭시키도록, 아름답게 외관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아마 몇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디자인학부가 미대에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인식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생각처럼 단순히 겉모습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디자인은 앞으로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게 해준 몇 가지 경험들을 통해 내가 찾은, 혹은 찾아나가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처음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테크니컬한 이유였다. 많은 공학 꿈나무들처럼 나 역시 SF 영화를 보고 자랐고, 머릿속에는 항상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이것은 곧 그럴 듯 해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고, 내게 의지를 심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이언맨 같은 뭔가 ‘멋진’ 것을 만들고 싶었다. 적어도 그건 못하더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전동 스케이트 보드 같은 것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그러한 것들을 만들고자 지식의 보고인 인터넷을 통해 아두이노와 같은 기본적인 툴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대한민국의 학생인 내가, 밤 11시 반까지 자습하고 집에 돌아가서 남는 시간에 그런 것들을 만들 방법이 없었고, 설령 많은 시간이 있었더라도 그러한 것들을 나 혼자서 또는 몇명이 팀을 이뤄서 만들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한계에 부딪힌 후에도 계속해서 나는 가능성을 찾아 헤맸다.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던 중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영재원 활동을 할 때 물리시간 과제로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 뭔가 작업해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직관적이고 쉬운 인터페이스를 가져, 나는 그 스케치업을 가지고 시험 끝난 후 몇날 며칠을 쉬지도 않고 갖고 놀면서 배웠다. 항상 그림으로 아이디어를 나타냈는데 3D로 표현된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형태를 갖춘 이미지를 보니 신기했다. 항상 머릿속으로만 돌려보던 것들을 화면에서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스케치업을 사용하다가 또 다른 한계에 맞닥뜨렸다. 곡면을 만들고 싶었는데 여러 플러그인도 설치해 보고 다양한 조작을 시도해 봤지만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화면 속에만 있던 것들을 실제로 꺼내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렇게 3D 프린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한상상실을 찾아가 내가 만든 모델을 인쇄해 보고자 했다. STL이라는 파일 형식으로 바꿔야 출력이 가능했는데, 스케치업으로 만든 파일은 변환하면 서피스가 깨져 출력할 수 없는 형태의 파일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좀 더 전문적인 CAD 프로그램을 배워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Rhino 라는 프로그램이 보통 산업디자인에서 사용된다고 했다. 네이버 카페에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강좌가 있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돈을 입금해 주셨고, 나는 난생 처음 온라인 원격 사교육을 받게 되었다. 일주일 중 자습 이틀을 빼고 집에 와서 수업을 들었다. 자습이 있는 날은 자습 마치고 돌아와서 새벽까지 기능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했다. 부족한 기능들은 유튜브에서 찾아보면서 연습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내가 원하는 형상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향상되었다.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결심해 최초로 배운 경험이었다.

Rhino로는 형상을 만질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했다. 재질을 입히고 조명을 조절하는 그 작업을 렌더링이라고 하는데, 렌더링을 하기 위해서 키샷을 유튜브를 통해서 배웠다. 드디어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구체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뛸듯이 기뻤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세계적인 공모전에 출품해 밀라노에 가서 상을 받기도 하고, 디자인 특허를 내기도 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다국적 기업들과 함께 판교에서 3개월 동안 작업을 하는 특별한 경험도 해보았다. 이것으로 무언가 멋진 것을 만들고 싶다는 내 욕망이 간접적으로는 어느정도 이뤄졌기에 나는 만족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라면 내가 했던 것은 디자인이 아닌 그저 3D 모델링이거나, 그림그리기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프로그래밍과 코딩의 차이, 수학과 연산의 차이와도 같다.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디자인을 하면서 계속 가졌던 의문이었다. 세계적인 공모전 수상작들을 찾아보고, 디자인 관련 책을 읽거나, 잡지를 구독하며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공모전에 수상하고 시상식에 참석해서도 프로 디자이너로써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좋은 디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디자인을 통해 배웠던 것은 문제를 찾고 그 솔루션을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물론 디자인은 본질이 아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제시하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Design Thinking은 감히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정의하는 것이다. 많은 생각들을 아이디어 노트에 정리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공부했던 경험과 문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은 분명 좋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좋은 엔지니어, 리더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디자인은 먼저 명확한 ‘문제’ 를 정의하고, 그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해결책을 의미한다. 사실 공학과 별반 차이가 없다. 공학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디자인이 앞으로의 시대에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를 푸는 훈련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시대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대와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점점 대체하고 SF에서나 일어나던 일들이 일어나는 시대이다.

나는 인공지능에 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 A와 B, 그리고 인공지능 C가 있다. 인간 A, B가 똑같이 할 수 있고,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인공지능 C가 더 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 A, B는 살아 온 환경도 다르고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 또한 다르다. 즉,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문제 인식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솔루션은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 C 역시 입력된 지식의 양이 다를 것이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항상 좋은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문제를 잘 정의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나간다면, 인간이 인공지능 혹은 다른 인간과 다른 더 좋은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디자인적 사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인간이라는 종의 보편적 지능으로 인공지능을 이길 방법은 없지만, 개개인의 창의성 또는 집단지성은 인공지능과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도 디자인을 좀 더 심도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단기유학이나 교환학생으로 배울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인터넷이라는 지식의 보고가 있어 TED나 MOOC를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으며, 도서관에도 월간 디자인과 같은 좋은 잡지와 수많은 책들이 있다.

디자인을 한국어로 가장 가깝게 풀이한 것은 ‘설계’ 이다. 디자인을 공부한다면 급변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길을 설계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_손범준 창의IT융합공학과 1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