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봄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2019-04-18 117

만화가 윤태호 작가님

만화가 윤태호 작가님

“우리는 아직 다 미생(未生)이다.”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을 알고 있는가? 수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이끈 드라마 ‘미생’은 윤태호 작가님의 웹툰 ‘미생’이 그 원작이다. 다음 웹툰에 연재된 ‘미생’은 누적 조회 수 11억 회 이상, 단행본 판매량 200만 부 이상이라는 초월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또 다른 대표작인 ‘이끼’와 ‘내부자들’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작을 여럿 탄생시킨 윤태호 작가님을 만나 뵈었다.

# 만화가의 길

윤태호 작가님께서 걸어오신 만화가의 길이 궁금했다. 어떻게 만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동안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면서 그림을 시작했고, 4학년 때 미술부에 들어간 이후로 계속 입시 미술을 준비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이 어려워져서 아버지께서 대학 진학을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그동안 준비하던 회화과 대신 미술교육과에 지원했는데, 실기 비율이 낮아서 떨어졌어요.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되돌아보니 방학 때마다 열심히 했던 게 회화보다 만화를 그리는 거였더라고요. 그때 아버지께 화나는 마음도 있고 해서 울컥하는 마음에 만화하겠다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속이 후련했어요. 사실 속으론 만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거죠.

작가님은 허영만 선생님과 조운학 선생님께 본격적으로 만화를 배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두 분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동네에 작은 만화방이 있었는데 만화책의 절반이 허영만 선생님 작품이었어요. 처음엔 마냥 재미있기만 했는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니 ‘이분 그림 너무 잘 그린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만화가가 된다면 허영만 선생님 같은 만화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88년에 만화 학원에 다니면서 3개월 정도 노숙을 했어요. 허영만 선생님 화실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찾아다니던 와중에 노숙하던 그곳에 선생님의 화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어요. 그렇게 제 만화 인생이 시작된 거죠. 그런데 문하생으로 들어가면 그림 데생을 배워야 하는데 허영만 선생님은 직접 다 그리셔서 배울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2년 있다가 허영만 선생님의 후배인 조운학 선생님의 화실로 갔어요. 거기선 데생을 엄청나게 그리면서 배울 수 있었죠. 한마디로 허영만 선생님은  만화가의 꿈을 꾸게 한 롤모델 같은 분이시고, 조운학 선생님은 실질적인 테크닉을 알려주신 분인 거죠.

그동안의 작품들

작가님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님만의 차별성에 대해 알고 싶었다.

작품에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장면마다 예상 가능한 대사가 있어요. 저는 대사를 쓸 때 꼭 옆에 다른 종이를 한 장 두고서 대사를 쓴 다음 소리 내면서 읽어 보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읽히면 좀 싫더라고요. 그래서 기왕이면 대부분의 대사를 쉽지만 자주 안 쓰는 말로 바꿔요. 그렇게 되면 해당 장면이 통속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그런 부분에 에너지를 많이 쓰죠.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니 작품에서 느껴졌던 섬세함이 다시 떠올랐다. 추가로 수많은 작품의 소재를 어떻게 떠올리시는지 여쭤 보았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항상 메모해 놓거든요? 근데 작품에 따라 문장 하나로 아이디어가 나올 때도 있고, 꼭 그리고 싶은 어떤 장면 때문에 나오는 때도 있어요. ‘미생’은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있었어요. 처음엔 바둑의 고수가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처세술을 가르쳐 주는 만화를 만들려 했죠.

그런데 저는 고수라는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하고, 일단 고수의 경지를 잘 몰라요. 그래서 바둑 하다가 망한 애로 바꿨죠. ‘파인’은 신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이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어요.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떤 한 장면이 떠올라서예요. 헬멧을 쓰고 철갑 같은 옷을 입고 바닷속에 내려가니 고래 등뼈 같은 배의 잔해와 산처럼 쌓인 그릇들이 있는 거죠.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만화로 만들게 된 거예요. 이렇게 어떤 소재를 생각해 내는 방법은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해요.

만화가 윤태호 작가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미지

# 작품을 위한 공부

 ‘미생’을 읽어보면 무역과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전문적인 내용은 어떻게 공부를 하시는 걸까?

주로 취재를 하죠. ‘미생’의 경우 3년 동안 한국기원에서 바둑 관련 취재만 했어요. 기업체들은 대부분 취재를 거절해서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분들을 인터뷰했죠.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무식을 고백하는 거예요. 취재를 하다 보면 안 무식하게 보이려고 상대방 말할 때 추임새를 넣거나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보다 내가 어느 선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지를 그분들께 알려드려요. 그래야 나에게 수위를 맞춰서 잘 얘기해줘요. 예를 들어 무역에 관해 얘기할 때, 제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나요?’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그분이 이야기를 쭉 풀어서 설명해 준 다음,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게 처리합니다.’라고 쉽게 답변해 주는 거죠. 그렇게 말씀하시는 내용을 다 녹음하고, 글로 옮겨 적은 다음 몇 번이고 보면서 계속 공부하는 거예요.

말로만 들어도 힘든 과정일 것 같다. 작가님께 힘들지는 않으셨냐고 여쭤 보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렵지만 재미있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거니까.
만화가 윤태호 작가님의 조언를 듣고있는 학생들

# 전국의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가님의 조언을 들어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고민이 많아요. 그리고 잘하고 싶은 욕망도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해요. 어떤 직업을 가질지,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과 고민이 많아요. 근데 꿈이라는 것은 우선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거든요. 많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일단은 공부도 하되, 다른 일들도 많이 해봄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작가님을 처음 뵈었을 때, 소탈하고 재치 있으신 모습에 금방 긴장이 누그러졌다. 덕분에 작가님과의 인터뷰가 팬미팅처럼 재미있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이만 글을 마친다.

알리미 23기 생명과학과 17학번 김동윤

알리미 23기 생명과학과 17학번 김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