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화공 이준구 교수팀, 세포 밖에서 단백질 아닌 ‘고분자’ 합성한다
[POSTECH 연구팀, 무세포 시스템에서 리보솜을 이용한 피리다지논 올리고머 합성]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항생제와 같이 여러 화학 물질을 적절히 배합해 화학반응을 이용하여 합성한다. 이런 소형 화합합성 의약품은 파마코포어(pharmacophore)라고 하는 약효를 내는 부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약품 분자내에 파마코포어를 도입하게 되면 전체의 합성과정이 보다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한계가 있다.
화학공학과 이준구 교수 연구팀이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와 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Texas)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러한 파마코포어를 단백질 번역과정의 생화학적 반응을 통해 세포 밖에서 합성하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그 연구성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리보솜은 수십억 년간 세포 내에서 진화해 온 거대분자로, 전사된 mRNA를 인식하고 서열 정보에 부합하는 L-알파-아미노산을 순차적으로 중합하여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로 변환하는 분자 중합 기계이다. 최근 합성생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리보솜의 중합 능력을 이용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비천연 아미노산의 중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비천연아미노산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비천연 기질이 연속적으로 리보솜 내에 도입될 경우, 현존하는 화학합성법으로 구현할 수 없는 고분자 중추구조의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하고, 다양한 비천연 아미노산을 합성하고 세포 밖에서(무세포 시스템)에서 리보솜을 이용해 이들을 중합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팀은 ‘감마-케토산’과 ‘하이드라지노산’이 리보솜 내부에 연속적으로 도입될 경우, 파마코포어로 자주 사용되는 ‘피리다지논(pyridazinone)’이라는 6각 고리형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연구팀은 나아가 6각 고리를 연속으로 도입하여 고분자 형태내 중추구조까지 형성하는 사실도 확인했다.
즉,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리보솜 내부로 삽입된 아미노산 단량체들이 서로 중합반응을 거치면 단량체들끼리 서로 양팔을 벌려 ‘악수’를 한 형태의 결합에 머물렀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아미노산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비천연 단량체를 디자인 함으로써, 단량체들끼리 양손 악수가 아닌 양팔 ‘팔짱’을 끼고 고리형태로 연결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양팔 팔짱 구조는 지금까지의 화학합성법으로 구현하기 매우 어려운 파마코포어 구조로서, 이는 리보솜을 이용한 단백질 합성과정이 단 한 가지 종류의 결합 방식(펩타이드 결합)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뒤집는 혁신적인 결과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온 생명 시스템이라도 사실은 생화학분자처럼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며, 이를 이용하면 기존의 생명현상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물질과 전혀 다른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주도한 이준구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단백질 번역과정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생화학분자들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최적화되어 이를 조금이라도 변형하면 그 기능을 잃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의외로 수정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이러한 무세포 시스템이 앞으로 새로운 의약품 합성 기술뿐만아니라 교대공중합체 또는 블럭공중합체의 합성 플랫폼으로 발전하여 정밀 고분자, 특성 섬유의 생산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정부지원연구재단(NRF)의 지원사업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