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화학 김경환 교수팀, ‘존재한 적 없던’ -70℃의 “물” 찰나(刹那)의빛으로 보다
– POSTECH-스톡홀름대 공동연구팀, 4세대방사광가속기로 과냉각물 실험적 관측 성공
– 영하 70℃물로 ‘무거운 물’-‘가벼운 물’로 상변이 과정 관측…학부생 참여 ‘눈길’
생명의 탄생과 유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구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존재, 물은 아직도 신비에 싸인 존재다. 영하 20도에 달하는 한파 속, 강 표면은 얼어붙어도, 강물은 모두 얼지 않아 물고기도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처럼 물은 다른 액체와 구분되는 여러 변칙적인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에서는 물의 비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 상태다.
이 중에서도 물이 무거운 물(HDL)과 가벼운 물(LDL)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액체-액체 임계점(LLCP)’ 가설은 여러 물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지만, 이를 증명하는데 필요한 영하 43℃ 이하의 ‘얼지 않은’ 물을 만들어 낼 수 없어 그동안 가설에 머물러 있었다.
화학과 김경환 교수팀과 스웨덴 스톡홀름대 앤더스 닐슨 교수팀은 영하 70℃의 얼지 않은 무거운 물을 만들어, 100 펨토초 이하의 X선을 이용, 이 물이 가벼운 물로 바뀌는 과정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물이 원래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의 직접적 증거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 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사이언스(Science)’지 최신호를 통해 발표됐다. 또 이 연구에는 연구 당시 아직 학부생이었던 유선주 씨와 정상민 씨도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물의 성질에 대한 다양한 가설 중,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은 극도로 냉각된 조건 아래에서는 물이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로 나뉘어지며 두 물 사이에서 상태가 변화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영하 43℃ 이하의 얼지 않은 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3년 전 이미 영하 46℃의 얼지 않은 물을 측정한 연구결과를 같은 저널을 통해 발표한 바 있는 연구팀은 이를 더 발전시켜 영하 70℃에서도 얼지 않은 상태의 물을 만드는 실험에 도전했다.
먼저 영하 160℃의 고밀도-비정질 얼음(HDA)을 만든 연구팀은 이 얼음을 강력한 레이저로 순간적으로 가열해 영하 70℃의 무거운 물을 만들어냈다. 이 물은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하는 물로, 이 물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밝으면서, 찰나보다 빠른 빛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 ‘꿈의 빛’으로 불리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XFEL)에서 나오는 X선을 활용, 영하 70℃의 얼지 않은 물을 순간적으로 측정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물이 가벼운 물로 상변이를 일으키는 과정을 관측했다.
이 연구 결과는 물이 원래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 두 가지의 액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로서, 이와 관련된 물의 여러 특성들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물이 왜 생명현상에 반드시 필요하고, 적합한 존재인가를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김경환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는 물의 비밀에 도전해온 세계 연구자들의 오랜 논쟁을 해소해 줄 중요한 연구결과이며, 물이 가진 변칙적인 특성을 이해해 물과 생명의 미스테리를 푸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기초 과학에서 큰 의미를 가질 이 중요한 연구 성과에서 학부생들이 상당 부분 기여한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통해 수행됐으며, 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PAL-XFEL을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