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7 겨울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 <사랑의 생애>, 소설가 이승우
알리미가 만난 사람 / <사랑의 생애>, 소설가 이승우
이번 ‘알리미가 만난 사람’ 에서는 계산, 논리와 같은 공대생스러운 주제에서 탈피하여 사랑, 성장 이라는 인문학적 주제를 이야기해보려합니다. 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30년 가까이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오신 분이 계신다. 바로 소설 <사랑의 생애> 저자 ‘이승우’ 작가님이다. 현재 조선대학교에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시라, 포항에서 광주까지 3시간을 달려가 작가님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시는 만큼 조금은 어려운 이미지를 상상했지만, 작가님은 걱정보다 훨씬 친숙하고 가깝게 다가오셨다. 지금부터 작가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보도록 하자.
꾸준한 집필 활동의 비결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고 있을 고민 중 하나는 입시나 진로와 관련한 문제일 것이다. 작가님은 신학대학을 졸업하시고 30년 가까이 꾸준히 책을 써오신 분이시다. 어쩌면 모든 학생들이 바라는 미래일지 모르는, 한 활동에 끊임 없이 매진해 오실 수 있던 비결이 있을지 궁금했다.
“우선 나는 내가 신학을 공부한 것이 소설을 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두 분야는 굉장히 근접해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 세상과 인간의 관계, 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신학은 ‘신’에 대한 학문이라기 보다 오히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에 가깝거든요.”
“또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다른 잘하는 일이 별로 없으면 되거든요. 욕망하는 것이 많거나, 재능이 많거나, 관심 가는 일이 많다면 당연히 하나에 집중하기 어렵겠죠.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하던 일을 계속 하지 않나요? 나는 그런 케이스 같아요. 사회적 욕망을 비롯해서 무엇을 획득하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해요. 작가라는 일도 20대 초반부터 시작했는데, 그 때 가장 잘하던 일이 글쓰기였고 작가가 되는 것이 몇 개 없는 욕망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인상 깊은, 흥미로운, 창의적인 글쓰기
그럼 “결국 작가님은 글쓰기를 잘하신다는 거네요!” 라는 장난 어린 되물음에 작가님은 나는 잘하는 일이 없는 것이라며 겸손한 대답을 되풀이 하셨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작가님의 말씀처럼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읽어 본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 <사랑의 생애>에는 등장 인물들의 서사 이외에도 사랑 자체에 대한 사유가 돋보인다. 사랑의 객체, 사람을 숙주에 비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시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사랑의 생애> 같은 경우는 사실 줄거리는 별 내용이 없어요. 그 소설을 쓸 때 제 의도는, 신분과 무언가를 초월해서 하는 극적인, 특별한 사랑을 하는 연인들의 이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느끼는 감정, 그 때 연인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신들도 모르는 들끓는 욕구가 무엇인가, 이것을 해부하고 탐구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연인들의 사랑의 풍경, 그 가운데 내부에서 발생하는 통제불능의 혼란한 여러 사건들을 서술한 거죠. 또 저는 원래 어떤 덩어리보다 그 안의 개별적인 현상들, 내용들, 내 마음 속의 심리 같은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는 관찰 방식을 좋아해요. 이런 자칫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일상의 순간들을 관찰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대상이 무엇이든 진짜를 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것의 진짜 동기는 무엇인가? 겉 모습이 표현되기 위해서 내부에서 발생한 요인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문학과 공대생
인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과 같은 순수 문학과 공대생은 그렇게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소설가이자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신 만큼, 작가님이 생각하기에 공대생도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과생들이 인문학적인 소설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을 키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긴 해도, 사실 소설을 읽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읽지 않아도 되죠.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거나,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읽어야 하는 것이 소설이에요. 이과생들이 읽는 책들은 보통 정보를 잡고 지식을 쌓는 실용적인 목적성이 있는 책들이잖아요? 그에 반해 소설은 어떤 정신 세계와의 만남이죠. 인식의 창을 열어주는 문장들을 통해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경험을 하는, 이런 만남은 여러 사유를 이끌어 내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세계는 기계만의 시대가 아닌, 기계와 인간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융합이 중심이지 않을까요? 당장 현재를 봐도, 지금은 ‘technology’라고 하는 것들은 기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면 발명될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니까요.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 있겠네요. 또 세태나 주위의 흐름에 너무 영향을 받지 않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를 하는 것이 인간이라 한다면, 이런 능력은 문학 작품만이 길러줄 수 있겠죠.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서, 소설 읽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고등학생들에게 “꿈을 꿔라!”기 보다는 “고민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시대가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물질과 출세 만능주의, 인간을 수단화 시키는 경쟁에 휩쓸린 구조를 용인한 상태에서 상상하는 꿈 보다는, 자신의 삶에 꾸준한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집단의 일부가 아닌 우주의 단 하나의 개체로 여길 때 하는 고민이 사유의 방식을 통해 이끌어 진다면, 성숙한 문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수능과 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고등학교 시기가 힘들겠지만, 작가님의 말씀처럼 다들 한 번씩 멈춰 서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사랑의 생애>도 정말 재미있으니까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글_이예원 신소재공학과 17학번(알리미 2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