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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름호 / 포스트 잇 / 화학 분야의 멘토, 박문정 교수님과의 만남

2017-07-21 586

화학 분야의 멘토, 박문정 교수님과의 만남

 

포스텍의 화학과 교수, 박문정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탄화수소계 전해질막의 나노구조와 전하수송 특성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로 세계적으로 촉망받고 있다. 미국 물리학회에서 고분자 물리화학 분야의 촉망받는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딜런 메달(John H. Dillon Medal)’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을 뿐 아니라 국제순정응용화학연합(IUPAC)의 젊은 과학자상 수상, 우리나라 최초 고분자화학 분야 국제저널 편집위원 선임 등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가장 먼저, 독자들에게 연구 분야를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산소 기체의 속도를 ‘Root-mean-square speed’로 보았을 때 속도는 482m/s지만 이 값은 속도일 뿐이고, 단위가 m2/s인 확산 속도(diffusion speed)는 기체 속도와 달리 숫자가 소수점 아래로 떨어지는 만큼 값의 차이가 큽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기체 분자는 직진 운동을 하지 않고 여기저기 부딪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귀를 뀌었을 때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사람이 내릴 때가 되어서야 지독한 냄새를 맡게 됩니다. 이를 고분자에 적용시켜 보면, 고분자 안에서 이온이 움직이는 것, 즉 전해질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이온도 고분자 안에서 기체처럼 여기저기 부딪혀 효율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이를 최대한 빠르게 지름길로 가도록 고분자를 디자인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삶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
지금 당장 힘든 순간을 떠올리면 가장 최근의 일이 떠오르기 마련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되잖아요. 굳이 생각해 보자면 진로가 불분명했던 대학원 시절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이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일희일비할 정도로 마음가짐이 불안정했어요. 그 시절을 잘 겪고 극복하게 된 데는 자존감이 큰 역할을 했죠.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바닥까지 좌절하지 않고 쉽게 회복합니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친구들은 자존감이 떨어지면 회복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거나 결국 회복되지 않고 좌절하게 돼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입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 중에서 좋은 학점(성적)이 나온 분야가 자신의 분야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교과서의 지식은 죽은 지식입니다. 죽은 지식의 적성은 연구를 잘하는 능력과는 상관이 없어요. 학점이 좋았던 친구들의 단점은 연구가 쉽게 진행되지 않으면 (자신보다 학점이 낮았던 친구들의 연구 성과가 더 뛰어나다면) 연구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진다는 거죠.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화학과와 화학공학과의 차이를 알려주신다면?

자연과학 분야인 화학은 원자, 분자 수준의 물질 특성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화학공학과는 기존에 있는 물질을 수정해서 물질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효율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죠.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의 물질을 어떤 공정 환경에서 다룰 지에 대한 조건을 최적화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분자를 디자인하는 것에 더 흥미가 많았어요.
이 두 분야에 대한 자신의 적성은 고등학생인 독자 여러분들이 구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예요. 포스텍의 경우 입학생의 전공 선택 시기가 2학년 1학기 이후로 늦춰졌습니다. 대학 생활 2년 동안 자신의 흥미가 공학인지 이학인지에 대한 구분을 하고 전공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또, 요즘에는 학문의 융합 및 복합이 흔하기 때문에 화학과 또는 화학공학과 어디를 진학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바뀔 수 있습니다.
박문정 교수님은 살면서 겪어온 경험들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조언을 건네 주셨다. 혹시 미래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필자처럼 존경하는 분과 대화를 나누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 존경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들이 독자들에게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 Long term, 넓은 시야를 가지세요!
10대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고, 대학교에 들어오면 과거 고등학교 내신의 중요성 역시 사라집니다. 과학자의 길을 걷고 싶은 여러분에게 조언을 하자면, 어떻게 하면 자신이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호기심을 잃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대학만을 목표로 한 친구들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흥미를 잃고 의욕이 없어져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 자신 있게 연구하기 힘들어 집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학부 시절 때는 연구실에서 여학생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화학공학과 여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만약 제가 대학 교수의 꿈을 초등학생 시절부터 꾸지 않았다면 ‘여자는 대학원생이 될 수 없다’라는 시선에 쉽게 좌절했을 겁니다. 대학 입시에 연연하는 꿈 말고, 20년 후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라는 ‘long term’ 꿈을 미리 꾸길 바랍니다. 또, 그 꿈을 위해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하길 바랍니다.


글_채지송 화학과 15학번(알리미 2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