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8 여름호 / 세상 찾기Ⅰ / 도전과 성장의 계기들

2018-07-12 538

도전과 성장의 계기들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성장에 의미를 둔다. 개인의 성장 요소는 기술, 지식, 태도, 습관으로 세분화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태도의 성장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것을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회로서 미끄럼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점을 배웠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던 것’과 ‘새로운 것’

POSTECH은 기술, 지식의 성장이 가능한 곳이다. 반면 태도의 성장은 어려운 곳이라 생각한다. 앞서 태도의 성장은 새로운 것을 접하며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어떻게, 왜, 그리고 어디서 새로운 것을 만나느냐가 개인의 가치관과 태도 형성에 영향을 준다. 새로운 것은 개인마다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데 나에게는 기존에 하던 일 혹은 공부와는 다른 분야의 그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POSTECH 생활은 새로운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곳이다. 그래서 태도의 성장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도의 성장을 위해서 새로운 것만 할 수는 없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며 지식과 기술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새로운 기회를 주었는가? 혹은 스스로 기회를 찾아 나선 적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했다. 먼저,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새로운 것을 접해볼 기회를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찾아나서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던 것’을 계속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에서 생존한 결과, 하던 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하던 것’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는 고민 자체를 어려운 일로 만들기 때문이다. 막상 새로운 일을 찾아도 ‘잘못되면 어떡하지, 여태 하던 것은 어떡하지’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2014년 5월의 어느 날, 영어III(현재 기초영어1) 과제를 하던 중에 받은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전화 내용에는 미끄럼틀을 만들어 보자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나는 당시에 틀에 박힌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하겠다고 말했다. 큰 고민 없이 시작한 미끄럼틀 프로젝트는 참 잘 되었다. 모금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400만 원을 모았고, 한 달이 지나서는 추가로 9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제품 기획 프로젝트였고 누구도 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모금이 끝난 뒤에는 프로젝트가 잘 풀리지 않았다. 늘어놓기도 민망할 정도로 프로젝트는 수차례 연기되었다. 프로젝트의 연기는 자연스레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키웠다. 견디기 참 힘들었다. 살면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당해본 적이 있었던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돈의 사용처를 결정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풀리지 않는 사업과 무거워져가는 책임감에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꽤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알면서도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아니면 이와는 무관하게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미끄럼틀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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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times.postech.ac.kr/news/articleView.html?idxno=9138

미끄럼틀 프로젝트가 알려준 것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미끄럼틀 프로젝트 덕에 나는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첫째, 열심히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미끄럼틀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 번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은 없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력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냉정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참 불편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 옆을 쫓아다니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 버티는 것도 능력이다. 나는 미끄럼틀 프로젝트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잘 버틴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끄럼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상당히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다수의 비난은 내 능력이 부족했기에 감수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몇 비판은 프로젝트 진행을 꺾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었다. 가끔은 Project manager인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논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꼭 미끄럼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말겠다.’라는 강한 믿음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미끄럼틀이 가지고 있는 의의와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반대의견 못지않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남는 건 사람이다. 미끄럼틀 프로젝트의 성공요인 중 또 다른 하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었다 무작정 버티기만 했다면 설치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매 위기의 순간마다 나의 부족한 능력을 메워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부족했던 예산문제를 해결해 준 긱온 캠퍼스 선배들, 학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88학번 이지연 선배님, 그리고 학생의 자발적인 프로젝트에 응원을 보내주신 전상민 처장님. 그리고 가장 많이 반대하셨음에도 가장 많이 도와주셨던 권인혁 선생님. 이곳에 다 나열하기 어렵지만 미끄럼틀은 좋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낸 작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작이 반이다. 그래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만약 내가 ‘나의 능력’, ‘주변 사람’, ‘프로젝트의 성공가능성’ 같은 요소들을 먼저 따졌다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는 했을까? 과감하게 도전해 보는 것에 성장과 성취가 따른다.

끝으로, 미끄럼틀 프로젝트는 태도의 성장 계기가 되었다. 먼저, 새로운 것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끼도록 나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끄럼틀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을 기반으로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되었다.프로젝트 자체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일단 해보려고 한다. 요즘은 미끄럼틀을 시작했을 때처럼 설레고 기대된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기에 나는 잘 할 것이다. 어려운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지금 하던 일을 때려 치지는 말자. 다만, 언젠가 한 번은 당신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나는 당신이 과감하게 그 기회를 붙잡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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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 신소재공학과 14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