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여름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2021-07-20 176

촉망받는 물리학도에서 예술가가 되기까지
배요섭 선배님과의 이야기

여러분은 급격하게 진로가 바뀐 적이 있나요? 포스텍에서 얻은 경험을 백 프로 활용하여
‘뛰다’라는 공연창작집단에서 연출가로 활동 중이신 배요섭 선배님. 분명 진로가 바뀌었지만, 그 이전의 경험들이 새로운 도전에 좋은 양분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촉망받는 물리학도에서 예술가가 되기까지 선배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궁리소, 뛰다’에서 연출가이자, 연구원,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는 배요섭입니다. 90년도에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연출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의 꿈을 펼쳤어요. 2001년에 졸업하고, 그 해에 동료들과 함께 공연창작집단 ‘뛰다’를 창단했습니다. 20년 넘게 극단을 이어가고 있고, 현재 강원도 화천에서 예술가 레지던시* ‘예술텃밭’을 운영하면서 예술 문화 확대에 힘쓰고 있어요.
* 예술가 레지던시(Artist Residency): 예술가들이 어느 지역이나 공간에 머물면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것

 

1 장
# 포스텍, 진로, 물리학

포스텍의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포스텍을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물리와 수학에 관심이 많아 물리학과를 진학했는데, 물리 공부가 재밌어서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좋았죠. 방학 때는 열심히 연구하는 촉망받는 물리학도였답니다. 그리고 ‘삶터’라는 풍물반에서 장구를 치는 것을 매우 좋아했어요. 친구와 함께 새벽에도 동아리방에서 장구를 칠 정도였죠. 장구를 직접 제작해 보기도 했어요. 통을 만들고 칠 작업과 말리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거쳐 장구를 만들었죠.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통 구조, 가죽 소재, 줄의 장력 등을 바꿔가며 소리를 녹음하여 그것의 파형을 분석했고, 이를 논문으로 기재했답니다. 방학에는 효자동에 방을 잡아 풍물놀이를 전수할 만큼 풍물을 즐겼어요. 이렇게 포스텍에서 4년을 정말 알차게 보냈어요. 포스텍은 저에게 집이고 학교이면서 놀이터였답니다.

그렇다면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신 걸까요?
대학 졸업 직전까지도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졸업 한두 달 전에 직관적으로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구실의 하얀 벽 때문이었죠. 방학 때마다 연구를 하면서, 온종일 바라보는 하얀 벽에서 외로움을 느꼈어요. 새로운 길을 찾다가, 풍물 공연 때 느낀 무대가 떠올랐어요.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를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연이란 생각이 들었고, 문득 연극이 떠올랐죠. 연극 경험이 없었기에, 졸업 직전에 부산의 한 극단에 들어가 6개월간 현장에서 연극을 배웠어요.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연극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입학했어요. 나름 교수님께 촉망받는 물리학도였기에,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왜 굳이 다른 길을 선택하냐’며 많이 반대했어요. 하지만, 저는 연극이 물리학과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포스텍에서 배운 물리학적 지식이 현재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죠.

물리학과의 경험이 현재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시네요!
‘뛰다’에서는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물리학과에서 겪었던 사고방식과 작업 방식이 현재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현재 벨기에 리에주 국립극단과 함께 작업 중인 <Strange Beauty>라는 작품이 있는데, 쿼크 이론을 최초로 주장한 물리학자인 머리 겔만의 자서전 제목에서 따왔어요. 물리학의 끈 이론처럼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알아내려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해요. “맥스웰 방정식,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물리학 이론들이 증명될 거라는 기대나 근거에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계속해서 연구하는 거죠. 이때 ‘아름다움은 어디서 왔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이러한 질문을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나누면서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작품이 물리학에서 하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코로나19를 예방하는 <물리적 거리두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존 대면 인터뷰를 온라인 인터뷰로 변경하였습니다.

 

2 장
# 연극, 뛰다

공연창작집단 ‘궁리소, 뛰다’는 창작 공연, 예술가 또는 지역과의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해요. 선배님은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실까요?
‘심장이 뛴다, 어디든 가자’라는 뜻의 ‘뛰다’로 이름을 지었어요. 저는 주로 연출을 담당하며, 배우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글쓰기, 소리 분석 등 다방면으로 작품 창작 방식을 연구하고 있어요. 2010년에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폐교를 스튜디오로 만들어 변화를 시도했어요. 전통적인 연극 방식에서 벗어나 연극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도록 커뮤니티 연극*을 진행해왔는데, 서울에서는 한계가 있었죠. 화천에 오니까 커뮤니티와의 협업이나 자유로운 공연이 가능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또한, 예술 텃밭을 매개로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성장시키고 있어요.

* 커뮤니티 연극(Community Theatre): 커뮤니티 구성원과 연극인들 간의 협력으로 만든 연극

실제로 한 연극에서 관객 중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 공연을 한 적이 있으시다고 해요. 그렇다면, 선배님께 연극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연극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술은 아니죠. 연기를 못한다고 회사를 못 차리고 취직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일상에서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쓸모없음은 필요하며, 연극이 그러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왜 필요할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결국 판단의 주체인 ‘나’는 누구일까에 대해 의문이 들죠. 저에게 연극은 나를 알아내기 위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것이 제가 연극을 하는 이유입니다.

 

3 장
# 마무리

진로를 고민 중인 전국의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 선배님의 진심을 담은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저는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많이 없어요. 사춘기 때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공부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공부만 하는 암울한 시기를 보냈죠. 제가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 이외의 삶을 충만하게 해줄 기회를 찾을 것 같아요. 또한, 물리학과에서 공부할 때, 수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 줄 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세계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우주를 바라보기 위해서 이러한 도구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중요한 고민을 하지 못했죠. ‘만약 이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이 계셨다면, 물리학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더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학교를 또 4년 다니면서 새로운 길을 찾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어느 학과를 가든,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공부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배요섭 선배님. 인터뷰 내내 물리학을 배우기를 참 잘했다며,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 포스텍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위한 디딤돌이 된 거죠. 여러분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이시고, 남은 학교생활 동안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활동을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지금까지 배워온 공부가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이 선배님의 이야기를 읽고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전해 주신 배요섭 선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글. 무은재학부 21학번 27기 알리미 문준혁